박진경의 대령 승진 축하연이 1948년 6월 17일 요정 옥성정에서 차려져 미군 장교와 11연대 참모가 동석하였다. 그는 6월 18일 새벽1시 귀가하여 숙소에서 잠이 들었는데, 3시 15분 한방의 총성이 울려 퍼지더니 숨을 거두었다.
손석호 하사가 박진경 연대장 방 안에 숨어들어 M1소총 방아쇠를 당겼다. 스물여덟 살 박진경은 그렇게 허무하게 죽었다. 그를 죽인 이들은 3대대장 문상길 중위 이하 몇 명의 부하들이었다. 그 후 딘 군정장관은 박진경의 시신을 싣고 상경하였다. 후임 연대장으로 최경록 중령이 임명되었다.
박진경이 사망하자 “제3중대장 문상길 중위와 연대 정보과 선임하사를 붙잡으면 전모를 밝힐 수 있을 것이다.”는 제보가 있었다. 암살주모자가 문상길 중위, 손선호 하사로 판명되고, 이 밖의 동조자로 양희천 이등상사, 신상우 일등중사, 강자규 중사, 배경용 하사 등이었다.
이들은 사형선고를 받고 1948년 9월 23일 경기도 수색에서 총살형이 집행되었다.
박진경의 장례식은 육군장 제1호로 기록되었다.
정부에서는 박진경을 준장으로 추서하였다.
1952년 11월 7일 제주도민 및 군경후원회 명의로 박대령 순직 충혼비를 세웠다.